Book review

장폴 사르트르, '말'

Se.lif (세리프) 2012. 6. 1. 10:11

장폴 사르트르, '말'










사르트르가 읽고 쓴 세상


 또래 친구들과 가장 다르다고 생각했던 것은 취미와 특기가 분명하지 않은 내 자신을 발견할 때였다. 비어 있는 공간을 채울 것을 강요하는 자기 소개서 앞에서 무슨 말을 해야할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하얀 종이를 보면 그래서 지레 겁부터 먹는다. 이 넓은 공간을 어떤 단어와 부호들로 채워야할 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렇게 채워진 공간에서 규정된 나의 모습을 발견할 때면, 이것이 진짜 내 모습인지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문하게 된다. 솔직히 말하면 글을 쓰면서 만나게 되는 나를 볼 때마다 그 글에서 튀어나오는 내 모습이 낯설다.

 사르트르는 글을 쓰면서 존재했고 그것이 실제의 자신의 모습이라고 했다. '읽기'와 '쓰기'로 나뉘어져 있는 이 텍스트를 보면 유년시절 그가 겪었던 고통을 따라가면서 살펴볼 수 있다. 처음에 사르트르는 어른들의 삶의 방식에 대해 순종하기도 하고 거부하기도 하면서 이 세상을 읽었다. 그에게는 아버지가 없었기에 그에게는 강력한 선험적 구조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는 다양한 가면으로 자신을 치장했고 어느 때는 그것이 자신의 모습이라고 믿었다. 그는 이중적인 생활을 했으며 어디에서나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없었다. 곧 회한에 빠져들었다.

 그러다가 그는 글을 쓰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그가 배우로서 직접 연극에 뛰어들 때는 자기 자신과 배우를 혼동하여 항상 끝에서는 자괴감에 빠져들었었다. 하지만 글쓰기는 달랐다. 그는 글을 쓰면서 자신의 세계를 만들었고 그 속의 주인공과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가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현실 세계와는 다르게 이 세계에서 그는 신과 같은 존재였다. 그는 소설 속의 배경에서 주인공의 내면으로 침투할 수도 있었고, 어려움에 처하게 만들 수도 있었으며, 현실에서 얻지 못하는 것들을 배치하기도 했다. 그 모든 요소들은 그가 만들어낸 것이었고, 그가 변화시키고 움직일 수 있는 것들이었다.

 너무나 우연적인 요소들만으로 이루어진 현실세계와 다르게 그는 작품 안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느낄 수 있었다. 실제로 이 소설은 그가 소설을 읽거나 상상하는 것들, 그리고 현실세계의 그의 모습이 이리저리 뒤섞여 있는데 이것은 그가 현실세계에 존재하면서도 실제로 존재하고 싶은 곳은 그의 세계 안이라는 이중성이 잘 드러날 수 있는 표현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의 외부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는 끊임없이 그가 어떠한 삶을 살아야하는지를 규정한다. 하지만 그는 선험적으로 형성된 관계에 안주하여 살아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는 끊임없이 현실 세계가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바에 의문을 던지고 다른 사람이 모두 아니라고 해도 그가 옳다고 생각하는 세계를 향해 나아간다.

 '읽기'와 '쓰기'라는 이 작품의 전체적인 구성은 사르트르가 세상을 살아온 방식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읽기'부분에서 사르트르는 샤를, 안마리, 친구들, 선생님들 등이 자신을 어떻게 규정하는지를 관찰하고 그것에 순응하려고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세계를 인지하고 그 속에 살고자 하는 강한 욕망을 드러낸다. 이렇게 사르트르는 이중적인 세계에 속해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끊임없이 불안을 느끼고, 나름의 존재 가치를 형성하기 위해 발버둥친다. 그러한 자신의 욕구를 해소할 수 있게 된 것은 '쓰기'를 알게 된 이후부터였다. 아버지와의 관계성을 상실하고 자신의 존재에 대해 계속해서 의문을 던져왔던 사르트르는 이제 적극적으로 자신을 규정했던 사회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간다. 샤를은 이러한 손자의 모습을 떨떠름한 모습으로 지켜보지만, 그것은 사르트르의 완고함을 더욱 더할 뿐이었다. 사르트르는 쓰기를 통해서 자신을 다시 발견했고, 생물학적인 한계를 넘어 그의 작품 세계에서 영원히 살아남기를 희구한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노력은 종말에 가서 좌절되고 만다. 그는 다양한 세계를 형성하여 그의 정체성을 부단히 확립하고자 했지만, 그것은 사르트르만을 위한 세계였고 그 어떤 타자와의 관계성도 형성하지 못한  허위적인 세계였다. 그는 그 세계 안에서 숨쉬고 존재 가치를 형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러한 세계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사르트르만의 세계였다.

 사르트르가 그토록 원했던 세계는 무엇일까? 어쩌면 그는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어했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의 존재를 인정해야 하는 가장 주요한 인물인 샤를(그는 읽기와 쓰기의 세계를 열어주었다)은 끝끝내 그가 창조해낸 세계를 인정하지 않았고, 사르트르는 극단적으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쓰기 행위를 통해서 확립했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그가 회상하는 것처럼 사르트르의 가치를 샤를이 조금만 더 알아주었더라면, 그는 문학교수의 길을 택했을지도 모른다. 그 가능성을 잃게 된 후에 사르트르는 자신을 작품 속에서 살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자신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