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싸움과 폭력에 열광한다.
"글래디에이터"는 그 옛날 콜로세움에서 있었던 검투사들의 혈투를 실감나게 그리면서도 그 속에 담긴 한 영웅의 기구한 운명을 담고 있는 영화다. 영화는 실화를 다루지는 않았지만, 혼란스러웠던 로마의 정치현실을 검투장에서의 이전투구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 막시무스는 게르만 족과의 전투에서 연전 연승하며, 국가적인 영웅으로 부상한 장군이었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것은 단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 막시무스는 그러한 연민의 눈으로 항상 병사들을 대했고, 병사들은 그의 솔직한 모습에 따뜻한 인간미와 영웅적인 면모를 발견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러한 소망은 24년의 재임기간 중 20여년을 전쟁을 일으키며 영토확장에 몰두했던 아우렐리우스 황제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긴 전쟁으로 로마제국은 항상 변방 국가와 사이가 좋지 못했고, 로마에도 항상 전쟁의 어두운 기운이 깔려있었다. 특히 지나치게 호전적이었던 막내 아들을 후계자로 내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황제의 고민은 극심해졌다.
우리는 왜 서로에게 창칼을 겨누는가? 막시무스처럼 사랑하는 대상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폭력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자칫 욕망으로 빠지게 되면 폭력만을 위한 폭력이 되풀이된다. 막시무스와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그러한 부분에서 환멸을 느꼈을 것이다.
왕위를 찬탈한 코모두스에 의해 가족을 잃고, 막시무스는 검투사가 된다. 이제는 그는 더이상 로마를 위해 싸우지 않는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 칼을 휘두르며, 사람들은 자신이 배팅한 검투사가 이기기만을 바란다. 검투사들의 삶은 한번의 검투 경기만을 위해서만 존재한다.
코모두스는 막시무스의 정체를 알아차리고는 줄곧 그를 죽이려 하지만, 막시무스의 뒤에는 그를 지지하는 수많은 시민이 있었다. 물론 이 당시의 시민들은 우민에 가까웠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그는 민중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고 있었지만, 그것은 잘못된 왕에 대한 진정한 의미의 투쟁이 아니었다.
막시무스는 홀로 외로이 싸웠다. 그리고 그 모습을 그와 함께 지냈던 검투사들이 알아주었다. 그들은 같은 상황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함께 뭉쳐야만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것을 머리가 아닌 눈과 귀로 알았다. 그 옛날 천하를 호령했던 막시무스의 기개는 검투사 한명 한명에게도 그대로 스며들어갔다.
처음에는 혼자였지만, 막시무스의 외로운 투쟁은 결국 로마를 뒤흔들 수 있는 혁명의 불꽃을 조금씩 키워가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로마 시민들은 콜로세움에서 열광하고 있었다. 지하에서는 검투사들이 정부군과 맞서 싸우며 막시무스가 무사히 탈출할 수 있도록 했다. 많은 검투사들이 죽었다. 하지만 그 죽음은 콜로세움에서의 죽음보다 더욱 갚진 것이었다.
막시무스는 해냈다.
가족에 대한 복수였지만, 그것은 또한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수립해달라는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염원을 전하는 손짓이기도 했다. 막시무스는 줄곧 검투복을 입고 있었지만, 그것은 코모두스 황제의 백색 갑옷과 대비되어 아이러니한 분위기를 극대화시켰다. 위 장면 비교에서 보듯이, 막시무스와 코모두스의 위치는 정확히 반대가 되었다.
욕망이란 무엇일까? 코모두스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는 태어날 때부터 악인은 아니었다. 코모두스는 끊임없이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어했지만 아우렐리우스의 눈에 코모두스는 항상 모자라보였다. 그속에서 코모두스는 상대를 넘어서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을 지니게 되었고 그 힘이 아버지를 독살하고 왕위를 찬탈하는 결과로 표출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우렐리우스 자신이 이 모든 비극의 씨앗이었다. 그는 왕정과 공화정 사이에서 확실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독살당했고, 코모두스의 욕망을 극도로 분출시키게 하는 단초를 제공했다. 그 때문에 코모두스는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폭력을 남발했고, 누나 '루실라'에게까지 접근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 모든 비극도 다시 가족에게로 돌아가려는 막시무스의 칼에 의해 끝을 맺을 수 있었다.
다시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그것을 잃는다면 결국 그에게 남는 것은 죽음 밖에 없다. 단지 살기 위해서 사는 삶만이 반복될 뿐이다.
막시무스는 그 의미를 찾고자 했고, 그것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버렸다.
그제서야 비로소 그는 문을 열고 가족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어떠한 복잡한 정치 이론도, 사회적인 맥락도 필요치 않았다. 그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가족이라는 두글자였고, 그것을 위해 모든 상황이 움직였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콜로세움에 꼭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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