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놀트 하우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문예사의 부분과 전체
사실 이 책은 유럽 여행을 떠나기 일주일 전부터 손에 들려 있었다. 주로 박물관과 미술관을 중심으로 여행루트를 짰었기에 이 책을 읽고 출발한다면 유럽을 조금이나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처음에는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저자가 기반으로 하고 있는 방대한 분량의 사회사적 사료와 복잡한 시대상황 때문에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었고, 중세시대 정도까지만 보고 한동안 책을 읽을 수 없었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기 전에 내 머리 속에는 신학적 체계에 틀지워지고 그 틀을 빠져나가려 몸부림치는 자연주의적 움직임이 유럽 세계의 문학과 예술에 대한 인상으로 심어지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그러한 배경을 가진 채 만나게 된 영국과 프랑스, 이탈리아의 모습은 정말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내게 선사해주었다.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와 대영박물관,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그리고 로마의 바티칸 박물관은 유럽 예술의 흐름이 어떠했는지를 생생하게 들려주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이 작품들이 안고 있는 세계에 대한 고민과 열정, 관조 등을 읽을 수 있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에는 사실 너무나 여유가 없었다. 나는 다시 바쁜 일상 속에 파묻혀버렸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버둥댔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일이 쏟아져 피부는 푸석푸석해지고 각박하다는 생각에 다시 떠나고 싶다는 생각만이 머리를 꽉꽉 채우고 있었다. 모든 것은 너무나 빠르게 흘러갔다. 유럽에서 보았던 도도한 역사의 줄기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하루에도 수백 번씩 선택의 기로에 서고 그 결과는 극단적으로 달라진다는 느낌까지도 받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시 이 책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하우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따라가 보았다. 하우저에 따르면 그 시대를 규정하는 지배적인 흐름이 있다고 해도 그 안에는 그 흐름과는 다른, 대부분의 경우 전혀 다른 방향의 흐름이 존재하고 있었으며, 이 서로 다른 에너지들 중에 어떠한 것이 주도권을 잡느냐에 따라서 문학과 예술은 발전해 왔다고 한다. 그리고 정신사를 대변하는 문학과 공연, 회화, 음악의 경향은 시대에 따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며 항상 변화한다는 것이다.
그런 것이었다. 이 당시의 사람들도 수많은 갈림길 사이에서 지배적인 경향을 따르기도 하고, 자신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찾아 가기도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이 가는 길에 의문을 던지고 다른 길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은 새로운 경향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 새로운 경향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 방향으로 역사는 회전해왔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커다란 역사의 흐름 속에서 보이던 작은 물방울들이 보였다. 잘 모르는 상태에서 그것은 큼지막한 파도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속에서 끊임없이 몸부림 치는 물방울 하나 하나가 있었다.
하우저는 내 머리 속에서 파편화 되어 있던 다양한 시대적 경향과 예술가들, 그리고 그 당시의 사회 모습을 연결하는 끈을 선물해주었다. 작품 하나 하나로 본다면 셀 수도 없이 많은 그 속에서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그 당시 사회의 핵심적인 이념과 구조를 살펴본다면 문학과 예술의 개별적인 움직임은 그 자체로서 큰 의미를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문학과 예술을 읽으며 그 속에 투영되어 있는 사회를 들여다보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오늘도 수많은 갈림길의 연속이다. 지금은 밀린 후기를 쓰고 있다. 이 짧은 토막글도 사회적 흐름의 한 켠에 설 수 있을까? 내가 가지고 있는 이 멘붕한 정신도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생각들 사이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그것은 누가 결정하는 것일까? 하지만 내 신념이 확고하다면 나는 내가 선택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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