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무래도 수험생 떄의 기억이 아닐까 한다. 원하는 대학에 가기 위해 잠을 아끼고 시간을 쪼개가며 수많은 참고서를 뒤지고 산더미 같은 문제들과 씨름했다. 시험에서는 단 한 문제에서라도 실수를 해서는 안되기에 풀었던 문제를 또 풀고 또 풀며 시험이 끝나는 종소리가 들릴 때까지 문제지를 계속해서 왔다갔다 했다. 그때는 항상 가슴이 두근거렸다. 누군가에게 쫓기는 기분이 들었고 한 번의 실수로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져내릴 수도 있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수능시험을 치르고 원하던 학교에 입학했다.
그렇다. 극도의 불안한 시기를 어떻게든 버텨냈기에 괜찮은 지위를 누리게 되었다. 이제 어디를 가도 서울대생이라는 것이 알려지는 순간 사람들은 나를 다른 눈으로 바라봤다. 처음에는 그런 관심을 받는 것이 어딘지 모르게 인정받는 것 같고, 기분도 좋았다. 하지만 그런 경험이 계속될수록 나는 나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서울대학생'에게 바라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무엇 때문인지 몰랐지만 시험공부를 위해 밤을 샜고, 밀린 과제를 해내려 발버둥쳤다. 일을 해내면 기뻤다. 하지만 곧 새로운 일들이 들이닥쳤고 어느 정도의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나를 채찍질해야만 했다.
이 책의 원제는 'Status Anxiety' 즉, 지위 불안이다. 사람은 인정받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한다. 그리고 그러한 인정을 지위로서 보장받고자 한다. 사회적으로 합의된 지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 지위를 지키기 위해 사람들은 더욱 열심히 일을 하고 노력한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현대에 와서 극단화된 것이다. 과거에는 신분제, 비대칭적 정보 등으로 인해 지위가 흔들린다거나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일은 드물었다. 그러나 지금은 무한 경쟁시대가 되었고, 사람들은 살아 남기 위해 하루하루를 쪼개고 또 쪼개며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다. 자본이 모든 경쟁력의 척도가 되면서 사람들은 점점 외면적 가치를 좇아 움직이게 되었고, 끊임없이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며 불안해하게 되었다.
알랭 드 보통은 현대인들이 봉착한 지위 불안이라는 문제, 즉 자신이 하찮게 여겨지는 위기 상황을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 등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그는 우선 우리가 지위에 대해 느끼는 불안감은 그러한 상황을 받아들이는 판단체계 (철학)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공중의 의견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판단을 통해 인간 세계의 모습을 통찰하는 지혜, 그리고 그러한 의견을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취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그는 지위로 인해 불안해하는 현대인들에게 반문한다. 예술에서도 비극과 희극이라는 분류를 통해 지위에 집착하거나 그로 인해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바라봄으로써 지위 불안을 해소 할 수 있다고 한다. 정치와 기독교, 보헤미아와 같은 해결책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를 통해서 인간은 자신이 너무나 집착했던 모습을 객관화시켜서 볼 수 있으며, 다른 관점에서 자신을 조망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끊임없이 불안해하는 우리들 각자의 모습은 외면적으로 판단되는 '성공'이라는 잣대에서 볼 때에 생겨나는 왜곡된 모습이 아닐까? 심지어 현대 사회는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온 인간의 존재 가치를 분쇄하고 그 자리에 자본을 앉혔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경쟁에서 낙오하거나 그 경쟁 안에서 끊임 없이 불안해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이 다섯가지 해결책은 다수의 가치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가치, 새로운 가치들에서 출발하여 위계를 세워, 주류의 시각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개개인의 존재 가치에 위로와 확신의 여지를 주었다는 데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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